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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코 캐피탈리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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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파적 아나키즘 관점의 비판 === 해당 문단은 아나코 캐피탈리즘 사상에 대한 좌파적 아나키스트들 입장의 관점을 다룬다. 위쪽에 좌파 아나키즘과의 관계 문단이 이미 있지만, 단순한 관계 설명을 넘어서 좌파적 아카니스트들이 아나코 캐피탈리즘을 어떻게 생각하고 비판하는지 비판하는 관점을 서술하는 것은 더 상세하고 분리된 긴 작업이기 때문에 여기에 서술한다. >만약 국가가 자신의 영토를 정당하게 소유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국가가 그 지역 내에 살고 있다고 추정 되는 누구에게도 규칙을 지키도록 하는 것이 당연하다. 그 영역 내에는 사적 재산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즉 국가가 정말로 지표면 전체를 소유하기 때문에 국가는 합법적으로 사적 재산을 강탈하거나 통제할 수 있다. 국가가 자신의 피지배자들이 영토를 떠나는 것을 허용하는 한, 그러면 국가는 마치자신의 재산 위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한 규칙들을 세우는 다른 소유자들이 하는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 말할 수 있다. > (...)요컨대, 이 이론은 중세의 왕뿐만 아니라 국가도 또한 그의 통치 지역의 모든 토지를 적어도 이론적으로 소유했던 봉건시대의 영주로 만든다. 새롭고 미소유의 자원 처녀지나 혹은 처녀 호수-은 국가에 의해 소유되는 것[국가의 '공공영역'(public domain)]으로 언제나 주장된다는 사실은 이 암묵적인 이론의 표현이다 > 그러나 위에서 개관한 우리의 홈스테딩이론은 국가 기구에 의한 그러한 어떤 구실도 뒤엎기에 충분하다. 도대체 무슨 권리에 의해서 국가라는 범죄자 들이 그 토지 영역의 소유권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가? 그들이 그 지역에 대한 궁극적인 의사결정에 관한 통제권을 장악하는 것은 패 나쁘다. 어떤 기준이 그들에게 전 영토에 대한 정당한 소유권을 과연 부여할 수 있는가? >---- > -머레이 로스바드, 《자유의 윤리The Ethics of Libery》, 2016년 한국어 번역판, 제 22장, 209쪽-[* 머레이 로스바드, 《자유의 윤리》, 전용덕, 이민석, 이승모 역 피앤씨미디어, (2016), 제 22장, 209쪽 ] >이 모순은 단 한 가지 방법으로만 해결할 수 있는데, 바로 '주어진 공간'의 사용자도 그 공간의 소유주라는 것입니다. 즉, 아나키스트들이 선호하는 점유(또는 “점유와 사용”) 시스템입니다. 그러나 로스바드는 자본주의자이며 사유재산, 비 노동 소득, 임금 노동, 자본가 및 집주인을 지지합니다. 즉, 그는 소유와 사용 사이의 차이를 지지하며, 이는 이러한 “궁극적인 의사 결정권”이 해당 재산을 소유하지는 않고 사용하는 사람들(즉, 세입자와 노동자)에게까지 확장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유 재산의 국가적 성격은 로스바드의 말에서 명확하게 드러나는데, '무정부' 자본주의 사회에서 재산 소유자는 특정 영역에 대한 '궁극적인 결정권'을 소유하며, 이는 현재 국가가 가지고 있는 권한이기도 합니다. 로스바드는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의 정의를 통해 “무정부”-자본주의가 무정부주의가 아님을 스스로 증명했습니다. [* 원문: Now, this contradiction can be solved in only one way — the users of the "given area" are also its owners. In other words, a system of possession (or "occupancy and use") as favoured by anarchists. However, Rothbard is a capitalist and supports private property, non-labour income, wage labour, capitalists and landlords. This means that he supports a divergence between ownership and use and this means that this "ultimate decision-making power" extends to those who use, but do not own, such property (i.e. tenants and workers). The statist nature of private property is clearly indicated by Rothbard’s words — the property owner in an "anarcho"-capitalist society possesses the "ultimate decision-making power" over a given area, which is also what the state has currently. Rothbard has, ironically, proved by his own definition that "anarcho"-capitalism is not anarchist. ] >---- >-Iain Mckay(2008) 《An Anarchist FAQ》section F.1 중에서- [* McKay, Iain. 2008. 《An Anarchist FAQ》.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section F.1 ] 좌파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을 간단히 요약하자면 이렇다. 1.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의 순수 자본주의 이론에서처럼 재산은 그것을 소유한 사람에게는 소유영역 내에서 절대적인 권한를 주지만 (노동자나 세입자처럼) 그것을 사용하지만 소유하지 못한 사람들의 권한을 배제한다. 2. 그렇기 때문에 소유와 사용이 분리된 자본주의적 재산은 소유자들이 비소유자들을 통제할 수 있게 되고 [* (...)만약 피켓 시위되고 있는 건물 앞의 도로가 사적 소유자들에 의해 소유 된다면, 이 소유자들은 피켓 시위자들이 소유자가 맞다고 보는 어떤 방법으로 도로를 사용할 수 있을까를 결정할 절대적인 권리를 가질 수 있을 것이다.-머레이 로스바드, 《자유의 윤리》, 전용덕, 이민석, 이승모 역 피앤씨미디어, (2016), 제 18장- 160쪽 ] 소유자와 비소유자간의 권위적 관계의 원천이 되며 지배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Iain Mckay, 2008)[* McKay, Iain. 2008.《An Anarchist FAQ》.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물론 아나코-캐피탈리스트들은 실제로 그들의 홈스테딩 취득 이론에 근거해서 당연히 국가가 자신들이 통치한다고 주장하는 영토를 정당하게 소유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여태껏 노동, 교환이 아닌 지배, 정복, 대량 살상 등 자유지상주의 정의론과 맞지 않는 불법적인 방법을 사용해서 영토를 통치하게 되었기 때문에 영토를 정당하게 소유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 머레이 로스바드, 《자유의 윤리》, 전용덕, 김이석, 이승모 역 , 피앤씨미디어, (2016) p.209~210 ] 그렇다면 일단 여기서 재산 소유자가 싫다면 그냥 그곳을 떠나면 되는 것 아닌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노동자가 회사가 싫다면 일을 그만두고 자기를 받아줄 다른 회사를 알아보던지 하면 되고 세들어 사는 곳의 부동산 주인이 싫다면 거기를 떠나서 (마찬가지로 자기를 받아줄) 다른 곳으로 가면 되고 그렇지 않는가? 라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이에 대해서도 좌파 무정부주의자들은 결국 자신들이 지적하는 부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Iain. Mckay(2008)는: >물론 “무정부”-자본주의자(anarcho-capitalist)는 이 명백한 결론을 피할 수 있는 또 다른 수단, 즉 시장이 재산 소유자의 남용을 제한할 것이라는 주장을 가지고 있습니다. 노동자가 자신의 통치자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다른 통치자를 찾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자본주의적 위계질서는 노동자와 임차인이 '동의'하기 때문에 괜찮습니다. 논리는 분명히 같지만, '무정부'- 자본주의자가 한 시민이 국가를 떠나 다른 국가에 가입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 국가제도를 지지할지는 의문입니다. 따라서 이는 자본주의 재산의 권위주의적 성격이라는 핵심 문제를 다루지 않습니다. [* 원문: Of course, the "anarcho"-capitalist has another means to avoid the obvious, namely the assertion that the market will limit the abuses of the property owners. If workers do not like their ruler then they can seek another. Thus capitalist hierarchy is fine as workers and tenants "consent" to it. While the logic is obviously the same, it is doubtful that an "anarcho"-capitalist would support the state just because its subjects can leave and join another one. As such, this does not address the core issue — the authoritarian nature of capitalist property. ] >---- >-Iain Mckay(2008) 《An Anarchist FAQ, Vol. 1》, section F.1 중에서- [* McKay, Iain. 2008. 《An Anarchist FAQ》.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section F.1] Stephen L. Newman(1984)도 이와 비슷한 의견을 내었는데: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이 자유와 정치권력의 대립을 강조하는 것은 그들의 세계관에서 권위의 역할을 모호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 그러나 사적 관계에서 행사되는 권위, 예를 들어 고용주와 직원 간의 관계에서는 아무런 이의가 없다. . . . [이는] 사적 권위를 사회적 통제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한 기이한 무감각을 드러낸다. 공적 권위와 사적 권위를 비교하면, 우리는 [우파] 자유지상주의자들에게 물어볼 수 있다: 자유를 행사하는 대가가 엄청나게 높을 때 국가의 명령과 고용주가 내린 명령 사이에 실질적인 차이가 있는가? . . . 물론 상황이 동일하지는 않지만, 불만을 품은 직원들에게 언제든 직장을 떠날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은 정치적 반체제 인사들에게 이민을 갈 자유가 있다고 말하는 것과 원칙적으로 다르지 않아 보인다.”[* 원문: The emphasis (right-wing) libertarians place on the opposition of liberty and political power tends to obscure the role of authority in their worldview . . . the authority exercised in private relationships, however — in the relationship between employer and employee, for instance — meets with no objection. . . . (This) reveals a curious insensitivity to the use of private authority as a means of social control. Comparing public and private authority, we might well ask of the (right-wing) libertarians: When the price of exercising one’s freedom is terribly high, what practical difference is there between the commands of the state and those issued by one’s employer? . . . Though admittedly the circumstances are not identical, telling disgruntled empowers that they are always free to leave their jobs seems no different in principle from telling political dissidents that they are free to emigrate." ] >---- >-Stephen L. Newman(1984), 《Liberalism at Wit’s End》, pp. 45-46-[* Stephen L. Newman(1984). 《Liberalism at Wits' End: The Libertarian Revolt Against the Modern State》. England: Cornell University. p.45~46] 그래서 여기서 말하는 자유라는 것은 무제한적인 자유가 아니라 ‘이익을 위한 경쟁 체제 내에서의 자유'를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이 제일 안 좋은 것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거기에 반칙이 없었다면 충분히 그런 상황을 용인한다는 입장이다. 이 경쟁은 '내가 마음에 든다'고 다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마음에 든 것이 그것에 권한이 있는 상대측 마음에도 들었을 때 상호계약이 성립되는 것으로서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내가 '좋은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그 ’좋은 회사 측에서도‘ 이득이 된다고 생각해서 나를 받아 주어야 그 회사에 있을 수 있다.(R. Nozick 1974, 262~264) (노직은 이러한 자본주의에서 노동자의 상황을 결혼제도에 빗대며 자발적인 것이라고 옹호하였다.)[* 로버트 노직,『아나키에서 유토피아로』남경희 옮김. 문학과지성사. 1997 326-327쪽 ] 무정부 자본주의자들은 자신들의 원칙에 위반이 없다면 자신들의 세상에서는 국가주의 하에서 보다 원하는 곳으로 이민을 가는 것이나 생활하는 곳에서 발언권을 가지는 것이 더 쉬울 수 있다고 반론한다. 여튼 그래서 좌파 무정부주의자들은 아나코 캐피탈리스트들과 국가에 대한 비판의식을 공유하지만 자본주의자들의 재산의 권리에 근거한 자유 개념이 권위주의적이고 국가주의와 유사한 억압적 측면이 있기 때문에 이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한다. > 넷째, 로스바드의 주장은 유사한 지배와 부자유의 관계를 만들어내는 유사한 상황이 "정의로운" 수단과 "부당한" 수단으로 만들어졌다면 어떻게든 다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로스바드는 재산이 "정의롭게" 취득되었기 때문에 자본가의 직원에 대한 권한이 국가의 신민에 대한 권한과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거짓입니다. 백성/시민과 직원은 모두 유사한 지배와 권위주의 관계에 있습니다. 2.2절에서 살펴보았듯이, 어떤 사람이 어떻게 그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지는 그 사람이 얼마나 자유로운지 고려할 때 중요하지 않다고 여겨집니다. 따라서 모든 이용 가능한 자원이 사적으로 소유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지배를 받기로 "동의"하는 사람은 마찬가지로 모든 이용 가능한 자원이 한 국가 또는 다른 국가에 의해 소유되기 때문에 국가에 가입해야 하는 사람과 정확히 같은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둘 다 부 자유롭고 지배에 기반한 권위주의적 관계의 일부입니다. [* 원문: Fourthly, Rothbard’s argument implies that similar circumstances producing similar relationships of domination and unfreedom are somehow different if they are created by "just" and "unjust" means. Rothbard claims that because the property is "justly" acquired it means the authority a capitalist over his employees is totally different from that of a state over its subject. But such a claim is false — both the subject/citizen and the employee are in a similar relationship of domination and authoritarianism. As we argued in section 2.2, how a person got into a situation is irrelevant when considering how free they are. Thus, the person who "consents" to be governed by another because all available resources are privately owned is in exactly the same situation as a person who has to join a state because all available resources are owned by one state or another. Both are unfree and are part of authoritarian relationships based upon domination. ] >---- >-Iain Mckay(2008/2012) 《An Anarchist FAQ》 부록:Anarchism and “anarcho”-capitalism: 2 What do “anarcho”-capitalists mean by “freedom”? 중에서-[* McKay, Iain. 2008/2012.《An Anarchist FAQ》부록:Anarchism and “anarcho”-capitalism.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2 What do “anarcho”-capitalists mean by “freedom” ] 이는 좌파 무정부주의 이론을 역사상 처음으로 체계화 시켰다는 평가를 받는 [[피에르조제프 프루동]](Pierre-Joseph Proudhon)의 《소유란 무엇인가?What is Property?》(1840)에서도 잘 드러난다. >"소유자, 도적, 영웅, 주권자 - 이 모든 명칭은 동의어이기 때문에 - 는 자신의 의지를 법으로 부과하고 모순이나 통제를 받지 않는다. 즉, 그는 입법권과 행정권을 동시에 가진 체한다... [그래서] 소유는 전제주의를 낳는다... 그것이 소유의 본질이라는 것이 너무나 분명해서, 그것을 확신하기 위해서는 그것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그의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관찰하기만 하면 된다. 소유는 사용 하고 남용 할 권리이다... 만약 물건이 재산이라면, 소유주가 왕이 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이며, 전제주의적 왕이 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자신의 통속된 영역에 비례하는 왕이 되지 않을 이유가 무엇인가 ? 그리고 각 소유주가 자신의 소유 영역 내에서 주권적 군주이고, 자신의 영역 전체에서 절대적인 왕이라면, 어떻게 소유주의 정부는 혼돈과 혼란이 아닐 수 있겠는가?." [* 영어 번역본: "The proprietor, the robber, the hero, the sovereign — for all these titles are synonymous — imposes his will as law, and suffers neither contradiction nor control; that is, he pretends to be the legislative and the executive power at once . . . (and so) property engenders despotism . . . That is so clearly the essence of property that, to be convinced of it, one need but remember what it is, and observe what happens around him. Property is the right to use and abuse . . . if goods are property, why should not the proprietors be kings, and despotic kings — kings in proportion to their facultes bonitaires? And if each proprietor is sovereign lord within the sphere of his property, absolute king throughout his own domain, how could a government of proprietors be any thing but chaos and confusion?" ] >---- >-Joseph Proudhon, 《What is Property?》 p. 266-267- [* Proudhon, P-J, 《What is Property: an inquiry into the principle of right and of government》, William Reeves Bookseller Ltd., London, 1969. p.266~267 ] 즉, 순수 자본주의 사상에서와 같이 사적 소유주는 ‘자신의 (재산) 소유영역 내에서 절대적인 주권자’이기 때문에 사실상 특정 영역내의 주권자와 동의어이며 재산의 소유자는 이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통제한다. 소유자와 사용자가 동일할 때 이것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일단 소유가 재산이 되고 두 가지가 분리되면 재산점유자는 사용자들에게 권력을 가지게 된다. 그래서 “재산은 전제주의를 낳고”, “재산은 그것을 소유하지 못한 자들을 배제해서 임대료나 임금노동계약 같은 방식으로 사용자들의 몫을 갈취하기 때문에 사실상 절도와 동등하다.” 그래서 자유를 위해선 그것에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좌파 아나키즘 이론의 주장이며 출발점이다.(Iain Mckay, 2012)[* McKay, Iain. 2012.《An Anarchist FAQ》.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section I.6] 그래서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대부분 소유(possession)에 대한 ‘점유, 사용’("occupancy and use") 개념을 옹호한다. 이것은 자기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는 물건들(자기 집, 옷, 신발 등)을 여전히 자신이 소유하고 통제 하지만 개인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 억압, 지대, 착취를 일으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안 쓰는 건물이나 안 쓰는 토지 등의) ‘자본주의적 재산(Property)’들의 소유를 부정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장이나 토지 등에 대해 그것의 사용자들(노동자들)이 그것에 대한 소유, 통제를 인정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정의에 따라 좌파 아나키스트들은 소유(possession)와 재산(Property)을 분리해서 생각한다.(참고: McKay, Iain. 2008.《An Anarchist FAQ》.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section B.3) ] 하지만 여기에 대해서 무정부 자본주의자들은 좌파 아나키스트들의 주장은 심각하게 왜곡된 것이고 자기가 사용하지 않는 재산도 소유할 수 있어야. 진정한 자유이며 그렇지 못하면 오히려 그것이 굉장한 억압을 불러올 것이고 시장원리를 위반하는 독점적인 세력이 없다면 시장이 재산의 남용을 제한할 것이라고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할 수 있다. 이처럼 양측의 입장은 수십년간 이어진 자본주의-사회주의 논쟁처럼 끊임없이 대립된다. >분명히, 그 자체의 주장에 따르면 "무정부"-자본주의(anarcho-capitalism)는 무정부주의가 아닙니다. 아나키스트들에게 이것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실질적인 정치 이론으로서의 아나키즘은 프루동이 《재산이란 무엇인가What is Property?》를 저술하면서 자본주의적 재산 때문에 노동자가 지주와 자본가에게 고용되어 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노동자는 자유롭다는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 탄생했습니다. >(...)프루동에게 무정부 상태는 “주인, 주권자의 부재”였고 “소유주”는 “자신의 의지를 법으로 강요하고 모순이나 통제를 받지 않기 때문에” “주권자”와 “동의어”였습니다. 즉, “각 소유주는 자신의 재산 영역 내에서 주권자”이기 때문에 “재산은 전제주의를 낳는다”는 의미였습니다. [『What is Property?』, p.264, p.266-7] 또한 프루동의 고전적 저작이 자신의 이념을 명백한 모순에서 구하기 위해 로스바드가 지지하는 사유재산 옹호에 대한 긴 비판 이라는 것을 강조해야 합니다. > 따라서 아이러니하게도 로스바드는 프루동과 동일한 분석을 반복하지만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면서 무정부주의자로 여겨지지를 기대합니다! 더욱이 아나키즘이 반대하는 주장으로 만들어진 것에 근거하면서 '무정부-자본주의가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고 부르는 것도 똑같이 아이러니한 일인 것 같습니다.[* 원문: Clearly, then, by its own arguments "anarcho"-capitalism is not anarchist. This should come as no surprise to anarchists. Anarchism, as a political theory, was born when Proudhon wrote <What is Property?> specifically to refute the notion that workers are free when capitalist property forces them to seek employment by landlords and capitalists.[br] (...)For Proudhon, anarchy was "the absence of a master, of a sovereign" while "proprietor" was "synonymous" with "sovereign" for he "imposes his will as law, and suffers neither contradiction nor control." This meant that "property engenders despotism," as "each proprietor is sovereign lord within the sphere of his property." (What is Property, p. 251, p. 130, p. 264 and pp. 266-7) It must also be stressed that Proudhon’s classic work is a lengthy critique of the kind of apologetics for private property Rothbard espouses to salvage his ideology from its obvious contradictions.[br] So, ironically, Rothbard repeats the same analysis as Proudhon but draws the opposite conclusions and expects to be considered an anarchist! Moreover, it seems equally ironic that "anarcho"-capitalism calls itself "anarchist" while basing itself on the arguments that anarchism was created in opposition to. ] >---- >-Iain Mckay(2008) 《An Anarchist FAQ》, section F.1 중에서-[* McKay, Iain. 2008.《An Anarchist FAQ》. Edinburgh and Oakland: AK Press, section F.1] 그래서 언뜻 보기에는 비슷해보여도 애초에 ‘자유란 재산으로서의 권리’ 라는 것을 핵심으로 하는 아나코 캐피탈리즘 사상과 ‘자본주의적 재산은 억압과 권위의 원천’ 으로 생각하는 좌파 아나키즘 사상은 서로 출발점 자체가 정반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갈등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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